호적과 김태준의 진화론적 문학사

2017-03-07 06:46李冬梅青岛滨海学院
韩国语教学与研究 2017年4期
关键词:李冬梅文光诗仙

| 李冬梅| 青岛滨海学院|

1.서론

호적(胡適 )의 『백화문학사』는 1928년에 출간되었고 김태준(金台俊)의 『조 선소설사』는1930 년부터 『 동아일보』 에 연재되었고1933년에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김태준은 『조선소설사 』연구에 있어서 ,실증주의사관이나 유물사관의 관점으로 분석하였는데 박희병에 의하면 김태준의 문학사에는 ‘두 모순된 방법론이 혼서’되 어 있다.(1)또한 과학화로 보는 견해도 있다.(2)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조선소설사 』에서 진화론사관이 적용되어 있다는점이다 .호적의 경우 ,중국신문학운동을 선언한 「문학개량추이」는 진화론에 구축한 것으로알려졌는데 그의 『백화문학사』도 진화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김태준은 졸업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구하기위해 1930년 에 중국 북경에 간 적이 있다.이 때 호적의 『백화문학사』는 대학교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 조선소설사 』에서 호적의 진화론적 관점을 언급한 것을 염두에 두면,김태준은 호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2.진화론사관의 도입

김태준은 『조선소설사』의 제 1장 에서 ‘자연도태’라는 개념을 제기한다 .“설화는 장구한시일에 자연도태를 당해서 흩어지기가 쉽기때문에 우리는 기록을 초월한 고대의 신령설화까지를 일일이 엿보기 어렵다”(3)고 하는 말에서 조선의 소설을 자연도태를 거친 진화의역사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김태준은 고대의 설화뿐만 아니라 후세의 작품도 자연도태를 거쳤다고 주장한다 .“다수한 작품은장구한 시일을 경과하는 동안에 취미가 단순하고 내용이 모두 귀일한 관계로 자연도태를받아서 그 대부분은 독자를 잃어버리고 문원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도태의승리자 즉 적자가 역사에 남는 것이다.그러므로 진화가 이루어진다 .김태준의 진화론사관은 『조선한문학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조선한문학사』 에서 김태준은 “문학 진화의 과정을 알며 그 성쇄변천의 인과를 살펴 금후에대한 문학의 추세를 추측하는 것이 문학사의사명”이라고 하면서 “순전히 조선에서 한자로쓴 문학적 방면인 시가 ,문장의 내용 혹은 형식의 변천”이 있다고 주장한다.(4)

대략 갑오 이후는 신흥하는 시민이 사회의 중추를 이루고 소설, 연극은 물론이오 ,모든 문화형태가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요구하는 기운에 당착하였다 .그 새 것이란 것은 낡은 것 속에 배태되어 낡은 것을 부정하고 나온 것이다.……오늘의 새 것도 명일의 진부한 것이 되나니사회현상을 그 생성에 있어서 또는 그 필연적소멸에 있어서 또는 그의 동적 상태에 있어서또는 그 전체와의 불가분한 연락에 있어서 고찰을 요한다 .……중국에서는 호적, 진독수 등을 선구로 한 문학혁명( 사 자폐지 , 백화문학 통용) 의가치를 세우고……

―김 태준,『증보조선소설사』,1990:220~221.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요구”한다는 주장과 “오늘의 새 것도 명일의 진부한 것이”된다는 주장은 진화론에 입각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문학이 요구되는 동시에 낡은 문학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한 시대에 그 시대의 문학을 지닌다는 호적의 주장과 일치하다 .이 문학사에서 호적을 거론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김태준의 문학사는 호적의 주장을 참고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1913년 에 왕국유는 『송원희곡사』에 진화론을 문학에 도입하였는데 1917년에호적은 「문학개량추이」를 통해서 이를 보급시켰다 .그리고 호적의 『백화문학사』는 진화론에 입각해서 작성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국어문학은 천여년 동안 역사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역사 진화의 결과가 아니었으면 근년의 운동은 그렇게 쉽지않을 것이다.”((555)))호적은 서론에서 그의 진화론적 관점을 밝힌다 .그는 한조시대의 민요부터 시작해서 중국문학의 진화를 추적한다.그에 의하면 한조시대에 이르러 그 이전의 문학이 이미 죽었다.

사실은 고대의 문학 ,예를 들어 「 시경」의 많은민요들은 그때 당시의 백화문학이다. 그런데 한조에 이르러 「시 경」 은 이미 고문학이 되어버렸다.

―김 태준,『증보조선소설사』,1990:7.

「 시경 」이 한조에 이르러 죽었다는 주장이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이 말을 통해서 호적의문학 진화론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한조가 망함에 따라 민요와 산문이 사라지고,대신 남조에 연애시와 북조에 영웅문학이 등장한다 .그리고 당조에 이르러서 당시가 성행된다 . 즉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문학의 양식도계속 변해가는 것이다 .호적의 이 주장은1917년에 발표한 「문학개량추이」 에서 변함이없다고 할 수 있다.

김태준과 호적은 모두 문학을 진화한 것으로 보고 구문학 대신에 신문학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시해서 안 되는 것은 그들이 진화론을 문학에 적용시킨 것은 단지 신문학의 필연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문학의 정당성 즉 신문학의 역사적인 기원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근대문학은근대가 들어와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역사발전의 산물인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진화론사관을 택했다고 할 수 있다.

2.자발적인 진화론사관

『조선소설사』에서 김태준은 “가음을 좋아하여 종일 그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나 이 같은 습성은 일반문학의 향상을 촉진하는 데 가장 좋은 유인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즉진화론에 입각한 김태준은 소설의 발생을 역사적으로 규정할 뿐 아니라 ,동시에 조선의근대소설은 그 기원이 바로 조선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그는 「춘향전 」을높게 평가하는 이유를 자발적인 생산에 두고있다 .“춘향전은 종래의 봉건적 형식을 전수하여 집대성한 저수지를 이루어서 다음시대의중계적 역할을 한 것이었다 .”「춘 향전 」은 한국 봉건사회 내부에 생산되었고 「춘 향전 」이중계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봉건적 문학에서근대적 문학으로 발전하는 사이에 「춘 향전 」이있다는 것이다 .즉 「춘 향전」은 한국의 근대문학이 봉건문학의 탯줄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또한 조선의 명작은“조선어가 가진 내재적 특질에 의해 조선 내부에서 나온 것”이라는 데서 조선소설의 기원뿐만 아니라 조선소설의 명작도 조선내부에생산된 것이라고 규명하고 있다.

김태준은 『조선소설사』의 결론부분에서 “조선의 소설은 원래 이야기책에서 출발했다.……외래의 소설을 수입하여 이야기책을 개혁해서 현대적 의의의 소설을 쓰게 된 것인데중간에 과정적으로 신소설 시대를 지났다.신소설은 이야기책의 전통에서 나오고 춘원 이후의 현 소설은 신소설에서 구피를 버리고 나온 것이다.”라 고 규명하고 있다 .이광수 이후의 현 소설은 한국의 근대소설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것은 신소설에서 발전해온 것이다.그리고 신소설은 한국 고대의 이야기책으로부터진화된 문학형식이다 .따라서 결국 한국의 근대문학은 역사적으로 진화해온 것이다.때문에 한국의 근대문학은 그 기원을 고대에서 찾아야 하기에 김태준이 한국의 근대문학을 고대의 이야기책에 그 기원을 두고 있고 결론을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호적은 진화론을 근거로 삼아새로운 시대의 문학인 백화문 신문학의 필연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백화문학사』에서 호적은 중국의 근대문학은 역사적으로진화해온 것임을 입증한다 .“국 문학이 1천여년 역사 진화의 산물이다 . 이 1천여 년의 역사가 없으면 ,역사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면,근년의 운동은 결코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수호전 』 ,『홍 루몽 』 등은 이미 백화문학의 신용을 양성했으니 지금은 때가 딱 맞는것이다 .따라서 국문학운동이 짧은 시일 내에큰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호적은 문학혁명의 기발을 들고 신문학의 시대를 창조해야 한다고 강렬하게 주장하는 동시에 신문학의 기원은 바로 자국 역사 속에 있다고 명시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고문은 이미 죽은 문자가 되었기 때문에 백화문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호적의 주장이다 .자연도태의 원리에의하면 죽은 문자는 당연히 도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화문은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진화해온 것이다 .“국풍이민간에서 온 것이고 ,초사의 구가도 민간에서온 것이며 한위육조의 악부가사도 민간에서온 것이다 .……소설은 거리에서의 설화와 강독에서 기원된다 .”민간에서 온다는 것은 백화문으로 씌여진다는 뜻이다 .국풍은 주조시대에 나타난 민요인 것을 염두에 둔다면 중국의 백화문은 주조시대부터 이미 존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조시대에 나타난 악부는평민문학 즉 백화문의 집대성이며 당시(唐诗)는 악부에서 발전한 것이다 .“이백은 문학의발전추세를 알아채고 ,그는 청진(清真)으로기려(绮丽)의 폐단을 구해주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대담하게 민간의 언어를 사용하여 민요의 풍격을 수용했다.”诗仙 이태백이 성공한 것은 민간에서 사용하는 언어인 백화로 창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백화문은 국풍에서 악부를 경유하여 당시까지 진화해왔고수많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따라서 호적의 논리에 따르면 백화문학은 진화의 과정을 밟아왔고 그 기원은 중국역사 속에 있는 것이다.국풍과 악부는 바로 중국신문학의 기원인 것이다.

3.전통문학의 문제

한국문학에 있어 한문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한글창제 이전에 한국문학은 한문으로창작되었다 .그러나 민족문학에 있어 한글은강조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의미의 조선소설 내지 문학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기원을두었다는 것이다”며 한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그것은 “국민의 사상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도구인 국어를 떠나서는 도저히 국민문학이니 향토예술이니 하는 것이 완성될 수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신문학도 한글을 떠나서 성립될 수 없다 .그리고 한국 신문학의창출과정은 탈한문학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글창제 이전에 한문학이 존재하였고 ,“그때까지 이 땅에 생존한 사람들의 역사가 이어져 온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이 땅의 사람들이 창조하고 향유한 문학 또는분명히 없을 수 없다.”(6)『조선소설사』에서김태준은 역시 이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조선의 소설은 상당한 정도로 한문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김태준이 제기한 대안은 第二义적이라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특수한 현상이라고 할 만큼 세종이전에도 수천 년 동안이나 민중의 사상 감정을기록하였고 때때로 귀족적인 문인의 손으로 중국인의 필치와 조금도 다름없이 자유롭게 의사를 발표한 자, 예컨대 최치원 , 이제현, 이색 등도 있었으며 한자는 거의 고동양 열국의 공통문자처럼 행용하게 되어 문학 사상에 뺄 수 없는영향을 주었으니 ……조선문학의 부문을 설화,가요 , 소설 , 희곡 , 한문학(第二义的)의 오자에나누어볼 적에, 한문학은 삼국시대에 비로소 수입되었다고 하여도 가하며……―『조 선소설사』 ,1933:13~14.

이 구절은 1939 년에 출판한 『증보조선소설사』와 1933년에 출판한 『조선소설사』에서 변함이 없다.(7)김태준은 한문학을 第二义적인조선문학으로 보고 설화와 가요와 같이 조선문학의 하부장르로 규정하고 있다 .이 점은1933 년에 발표한 「조선가요개설 가요와 조선문학」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한문학도그 어떤 부분은 제이의적으로 조선 문학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과거에 중국문자로 불완전하나마 우리네의제이국자처럼 자유롭게 씌어온 특수한 사정이있고 한글 발명 이전 장구한 시일에 중국문자를 가차해서 우리네의 생각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8)한글창제 이전에 조선의 문인들이한자를 자신의 언어로 썼던 것이다 .한자를완전히 부정한다면 한글창제 이전에 조선에서조선인들이 지은 조선문학을 거의 모두 부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김태준은 한문학을 조선의 제이의적 문학으로 규정한 것은 한글로 쓰여진 한국 근대문학의 자주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한문학을 조선문학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한자소설이지만 당시 조선의 사회 ,인정을 잘 보여주는 문장으로든지 분량으로든지 조선 단편소설계에 독왕독래하는 느낌을 주는 것 ,박지원의연암소설이다 .”한문으로 씌여져 있지만 박지원의 소설은 조선소설이라는 것이다.그것은조선의 사회와 조선의 인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즉 ,한문으로 창작하였지만 조선의 사회와 인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다름 아닌조선소설이라는 것이다 .1929년에 이광수가「조선문학의 개념」에서 한 나라의 문학은 그나라의 문자로 쓰는 것이라고 규정한다.“문학은 결코 그 작가의 국적을 따라 어느 국문학에 속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쓰여진 국문을 따라 어느 국적에 속하는 것이다.”(9)따라서 이광수는 한문으로 창작된 조선의 문학을모두 중국문학으로 분류시킨다 .그러나 김태준은 『조선소설사』에서 “「구 운몽」이야말로 조선사회 사정사전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서 「구운몽 」등을 조선문학 안으로 끌어안는다.

“조선문학의 부문을 설화, 가요, 소설, 희곡,한문학 (제 이의적)의 오자에 나누어볼 적에 한문학은 삼국시대에 비로소 수입되었다”고 하면서 김태준은 한문학을 수입된 것으로 규정하고 ,그래도 가요와 소설과 같이 한국문학의일부를 이루고 있다고 인정한다 .한문학을 한국의 역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한문학은가요 ,소설 등과 같이 한국의 역사 속에서 발전해왔고 지울 수 없는 한국문학의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김태준과 달리 ,호적에게는 민족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문언문으로 쓰여진 중국고대의 걸작들을 어떻게보느냐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호적이 명확한답을 준다 .1919년에 그는 「신사조의 의의」를 발표하고 ‘국 고정리(整理国故) ’운동을 제창하면서 “중국 모든 과거의 문화역사는 우리의 국고인데 국학이라고도 칭한다 .국고는 국수를 포함하고 찌꺼기도 포함한다 .……국학의사명은 국민들로 하여금 중국 과거의 문화사를 알게 하는 것이다”(10)라고 주장하였다.

“무엇이 국수인지 무엇이 찌꺼기인지를 과학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공을 들여 국고정리를 해야 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호적은중국의 고전문학을 전반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국수를 추출하려고 한다 .“국수가 망하게 된다면 청년들의 잘못이 아니라늙은이들이 정리를 안 해서 그럴 것이다.국수멸망의 화를 면하기 위해서 국고를 정리하고 청년들로 하여금 읽도록 해야 한다.”(11)

호적은 국고정리를 하는 원인은 예전에 “역사진화론의 안목이 없고 학술적인 기원과 한사상의 기인과 발전”에 대하여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패담에서 진정한 의미를 ,미신에서 진정한 가치를추출하려고”(12)한다 .즉 호적은 국고정리운동을 통해서 중국문학의 기원을 규명하고자고전문학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4.결론

김태준에게 한문문제와 호적에게 고전문학은 어떻게 보면 같은 문제이다 .관건은 조선의 땅에서 한문으로 씌여진 문학과 중국 문언문으로 씌여진 고전문학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이다.

김태준의 『조선소설사 』와 호적의 『백화문학사』는 모두 진화론에 입각해서 한국과 중국의문학발전과 진화사를 정리하였다 .이 연구들에 의해서 한국과 중국의 신문학의 출현은 역사발전의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문학은 역사적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신문학의 기원은 역사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즉 한국과 중국의 신문학은 비록 서구근대문학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기원은 자국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문학은 역사적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고대에 존재하던 고전문학들을 함부로 부정할 수 없게 된다.근대문학의 기원은 바로 고대 ,고전문학에 있기때문이다.

조선의 문학은 고대부터 외래문학을 수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흥 부전」의 경우 ,외래문학을 훌륭한 조선문학으로 개조하기도 하였다 .세계문학의 시선으로 보면 한문의 문제가 쉬워진다 .김태준은 한문으로 쓰여진 문학을 제이의적인 조선문학으로 규정하고외래문학처럼 포용시킴으로써 신문학의 필연성과 역사적 정당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한국문학의 자주성을 확보하게 된다.

주석

(1)박희병, 「천태산인의 국문학연구 (상 ) 」,『민족문학사연구』 3호 , 민족문학사연구소,1993.

(1)전성운 ,「김태준 문학의 과학화와 사회주의문학사관」 , 『 우리어문연구』 23 집,2004.

(2)김태준 ,『증보조선소설사』 , 서울 : 한길사,1990:32.이하 같은 책 인용은 페이지만 표시함.

(3)김태준, 『조선한문학사』 , 서울: 태학사,1999:10~11.

(4) 胡适, 『白话文学史』 , 文光图书有限公司, 臺北,1983:1.

(5)임형택, 「한국근대의 ‘국 문학’과 문학사」, 『민족문학사연구』 ,2011:199.

(6)그러나 1930년에 『동 아일보』 에 서 발표할 당시에 이 내용을 담고 있는 「제 1장 조선소설의 기원」이라는 장은 아예 없었다. 「조선소설의 기원」은 1933년에 출판할 때 추가한 내용으로 보인다 .1933년 에 발표한 「조선가요개설 ,가요와 조선문학」 에서 김태준은 이광수가 1929년 『신 생』에 발표한 「조선문학의 개념」에서 『구운몽』 을 중국작품으로 규정하는 것을 반박하고 있다.1930년말에도 김태준은 한문학을 단지 ‘중국문학의 일방계’로 규정하지만 1933년에 와서 이광수의 논점을 비판하게 되었다 .따라서 한문학을 第二义的 조건 문학으로 규정한 것이 1933년 경의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통해서 김태준은 1930~1933년 사이에 한문학에 대하여 계속 고민했다고 볼 수 있다.또한 『조선소설사』 제2 편 제1 장에서 한문학을 第二义 조건 문학으로 규정하고 제6편 제2장에서 다시 한자소설을 ‘중국문학의 일방계’로 서술하는 것은 한문학에 대한 김태준의 모순적 심리를 투영하기도 한다.

(7)김태준, 「조선가요개설 ,가요와 조선문학」,『 조선일보』 ,1933.10.21.

(8)이광수, 「조선문학의 개념」 , 『이 광수전집16』,삼중당,1966:176.

(9)胡适 , 「国学发刊宣言」 , 『胡 适文存2』 ,1 978: 7.

(10)胡适,「再谈谈整理国故」 ,『 胡适文集12』,1998:94.

(11) 胡适,「新思潮的意义」,『胡适文存』,1978:735.

참고문헌

[1]김태준, 『증보조선소설사』 , 서울: 한길사,1990.

[2]김태준, 『조선한문학사』,서울:태학사,1999.

[3]박희병 ,「천태산인의 국문학연구(상 ) 」 ,『민족문학사연구』 3호 , 민족문학사연구소,1993.

[4]이광수, 「조선문학의 개념」 , 『이 광수전집16』,삼중당,1966.

[5]임형택, 「한국근대의 ‘국 문학’과 문학사」, 『민족문학사연구 46』,2011.

[6]胡适,『白话文学史』,文光图书有限公司,臺北,1983.

[7]胡适,『胡适文存』,远 东图书公司,臺北,1 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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